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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 어린시절과 창업, 자녀들, 본받을 점

by 역정이 2025. 4. 8.

정주영 회장 어린 시절과 창업

정주영 회장은 1915년 11월 25일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현재 북한 지역)에서 6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호는 '아산'입니다. 이는 아산리 고향 지명에서 따온 것입니다.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우며 가족을 부양하며 성장했습니다. 1930년 15세의 나이로 송전소학교를 졸업한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진학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농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농업으로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고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여러 차례 가출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첫 가출은 17살 때입니다. 가출 후 함경남도 고원 지역의 철도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설득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두어 번 더 가출을 시도했으나 매번 가족에 의해 제지되거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19살이 된 정주영은 네 번째 가출을 하게 됩니다. 친구 오인보와 함께 가출을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서울로 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인천 부둣가에서 하역 작업 등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쌀가게인 '복흥상회'에 취직하여 쌀 한 가마니 값의 월급을 받으며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그의 근면성과 책임감을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이처럼 어린 시절은 가난하고 도전과 실패가 거듭되었으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적 하여 자신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훗날 현대그룹을 창립하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현대그룹을 창업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930년대 후반 정주영 회장은 서울에서 쌀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사업 감각을 키워갔습니다. 이후 1938년에는 '경일상회'를 설립하여 쌀과 건축자재 등을 취급하며 사업 기반을 다져갔습니다. 1946년 서울 중구 초동에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여 자동차 수리 및 정비 사업을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현대'라는 상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47년 5월 '현대토건사'를 설립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현대건설을 창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현대건설은 국내외에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이러한 도전과 혁신을 통해 현대그룹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그의 기업가 정신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자녀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그의 부인 변중석 여사 사이에는 8남 3녀의 자녀가 있습니다. 자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정몽필(1934년생) - 인천제철 사장을 역임했고 1982년 교통사고로 별세했습니다.

둘째 정몽구(1938년생) -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으로 현대자동차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으며 현재 그의 아들 정의선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셋째 정몽근(1942년생) - 현대백화점그룹 명예회장으로 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 등 유통 분야에서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넷째 정몽우(1945년생) - 전 현대알루미늉 회장으로 1990년에 별세했습니다.

다섯째 정몽헌(1948년생) - 전 현대그룹 회장으로 아버지 정주영을 이어 대북 사업을 주도했으며 2003년에 별세했습니다. 그의 부인 현정은 여사가 현재 현대그룹 회장직을 맡아 경영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정몽준(1951년생) - 정치인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회장입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FIFA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스포츠 분야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일곱째 정몽윤(1955년생) -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으로 보험업계를 이끌며 그룹의 금융 부문을 강화했습니다.

여덟째 정몽일(1959년생) - 현대기업금융 대표이사로 금융 분야에서 경영 활동을 펼쳤습니다.

아홉째 정희영 - 정주영 회장의 딸이며, 서한그룹 명예회장 김영주가 배우자입니다. 현대건설의 해외 사업 초기, 태국 공사 현장에서 직원들의 직접 챙기는 등 내조를 했습니다.

열째 정정희 - 정주영 회장의 딸이며, 배우자는 전 동명목재 회장 이행수입니다. 가족 및 사회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열한 번째 정영이 - 정주영 회장의 딸이며, 배우자는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 김영환입니다. 가족 및 사회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자녀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현대그룹 및 관련 기업들의 성장을 이끌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본받을 점

정주영 그의 삶과 경영 철학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학업을 중단해야 했으나 더 나은 삶을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일자리를 경험하며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그에게 강한 끈기와 의지를 키워주었고 이후 사업을 시작하는데 큰 밑거름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자동차 정비소 운영, 건설업 진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실행력으로 현대그룹을 성장시켰습니다. 특히 현대건설을 통해 국내외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었습니다. 또한 조직의 리더로서 직원들과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현장에 직접 방문하여 직원들과 소통하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습니다. 이러한 책임감과 리더십은 조직의 결속력을 키우고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업의 이익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서울 올림픽 유치에 기여하고 남북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국가와 사회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러한 공헌은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이러한 특징들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그의 경영 철학과 삶의 자세는 후손들에게 소중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정주영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