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어린 시절
조선 제9대 왕 성종은 1457년 8월 19일(음력 7월 30일) 한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이혈(李娎)이며 조선 제7대 왕 세조의 손자입니다. 아버지는 세조의 장남이었던 덕종(의경세자)이며, 어머니는 소혜왕후 한 씨입니다. 성종이 태어났을 때 조선은 할아버지인 세조가 왕위에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 덕종은 세자로 책봉된 상태였습니다. 성종의 어머니인 소혜왕후 한 씨는 학식이 깊고 지혜롭고 어린 성종의 교육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성종이 4세 되던 해(1461년) 아버지 덕종(의경세자)이 갑작스럽게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에 덕종의 동생인 해양대군(훗날 예종)이 새로운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성종은 왕세자의 아들이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왕위 계승 서열에서 밀리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성종은 조용히 외조부 한확(소혜왕후의 아버지)과 어머니 소혜왕후의 보호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성종은 어린 시절부터 유교 경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고 학문을 매우 좋아하는 총명한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어머니 소혜왕후가 직접 교육을 지도하며 성리학을 가르치고 학자들과의 교류도 하였습니다. 세조는 손자인 성종을 총애했고 그를 위해 유능한 학자들을 붙여 가르치게 했습니다. 1468년 성종의 작은아버지이자 당시 왕이었던 예종(8대 왕)이 병약한 상태로 즉위했으나 재위 1년 만에 건강 악화로 위독해졌습니다. 예종은 자식이 있었으나 너무 어려 왕위를 잇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예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1469년 13세의 어린 성종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성종은 아직 나이가 어려 정식으로 친정을 하지 못하고 할머니인 정희왕후(세조의 왕비)가 수렴 청정을 했습니다.
정치와 업적
성종은 조선 왕조의 기틀을 확립한 군주로 평가 받습니다. 유교 정치의 완성, 법과 제도의 정비, 학문과 문화에 발전을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는 25년 동안 통치하며 조선의 안정적인 통치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성종은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 했으나 초기에는 할머니인 정희왕후(세조의 왕비)가 수렴 청정을 하며 정국을 운영했습니다. 정희왕후는 안정적인 정치를 유지하며 성종이 성장할 시간을 주었고 대신들을 통해 국가 운영을 지도했습니다. 1476년 성종이 20세가 되면서 직접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성종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하나 꼽으라면 조선의 통치 법전인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반포한 것입니다. 경국대전이란 세조(7대 왕) 때부터 편찬이 시작된 조선의 기본 법전으로 성종 2년(1471년) 최종 정리 후 성종 11년(1484년)에 전국에 반포했습니다.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운영 원칙은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확립되게 됩니다. 성종은 경국대전을 통해 왕권과 신권 간의 균형을 조정하여 조선의 정치 구조를 확립하게 됩니다.
경국대전의 내용으로는 의정부 중심의 정치 운영, 과거제 시행 기준 정비, 지방 행정 체계 정리, 형법 및 세법 정비 등이 있습니다. 경국대전은 이후 500년간 조선의 기본 법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조선의 유교적 통치 체계를 완성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성종은 조선을 유교 국가로 완전히 정착시키기 위해 성리학을 장려하고 유교적 정치 기틀을 확립했습니다. 중앙 정계에서 훈구파(공신 세력)와 사림파(청렴한 학자층)의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지방 유학자 출신인 김종직(사림파 대표)을 중앙 정계에 등용하여 성리학 정치를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이를 계기로 사림파가 세력을 키우면서 연산군 때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성종은 왕에게 학문을 가르치고 정책을 자문하는 기관인 홍문관을 설치했습니다. 홍문관에 유능한 유학자들을 기용하여 국정 운영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향교(지방 교육기관)를 활성화하여 유교 교육을 강화하고 과거제도를 개혁하여 능력 있는 학자들이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세종 때 편찬된 농업 기술서인 '농사직설'을 전국에 배포하여 농업 생산성을 향상 시켰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발생했을 때 환곡 제도(국가 비축미를 백성에게 대여하는 제도)를 운영하여 농민 보호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조세 징수를 공정하게 운영하도록 세금 부과 기준을 재정비하고 지방 수령들의 부정한 세금 징수를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습니다.
성종 때 동국통감을 편찬했습니다. 동국통감은 조선 최초의 역사서로 고려 시대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책입니다. 그리고 조선의 궁중 음악과 의례 음악을 정리한 음악 백과사전인 악학궤범을 편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국가 의례(혼례, 상례, 제사 등)를 정리한 의례서인 국조오례의를 편찬하여 조선 왕실 및 관료 사회에서 지켜야 할 의례 기준을 정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의 억울한 형벌을 방지하기 위해 부당한 고문과 과도한 형벌을 금지하고 부녀자 보호법을 시행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과부, 고아, 노인을 보호하는 정책인 환과고독 구제 정책도 실시했습니다.
성종은 1494년 37세의 나이로 승하하였으며 아들 연산군(10대 왕)이 즉위 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
성종은 조선 왕 중 후궁이 가장 많았던 왕입니다. 정식 왕비 2명과 10명의 후궁에게서 왕자 16명, 공주 12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성종이 가장 총애했던 후궁은 숙의 윤 씨로 연산군의 생모이자 폐비 윤 씨입니다. 폐비 윤 씨는 과도한 시기 질투심으로 왕비 공혜왕후를 모함하다 폐위 사사된 인물입니다. 성종은 유교적 질서를 지키고 국가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아들인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훗날 조선을 흔드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