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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어린 시절, 예지력, 업적, 역사적 의의

by 역정이 2025. 3. 11.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

선덕여왕은 신라 최초이자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다. 606년경(추정) 출생하였고 본명은 덕만이다. 아버지는 신라 26대 왕인 진평왕, 어머니는 마야부인이다. 신분은 성골로 신라 왕족 중에서도 왕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신분을 갖고 태어났다. 성골 출신인 덕만은 당시 여성이 왕이 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선덕여왕은 어려서부터 지혜롭고 총명한 성격이었다. 그녀는 왕실에서 불교와 유교 학문을 익히며 성정했고 특히 정치적 안목과 외교적 감각을 익히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진평왕을 따라 국정 운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왕으로서 필요한 능력을 키웠다. 

신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왕이 되었지만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덕이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일부 귀족들은 여성이 왕이 될 수 없다며 반대하기도 했다. 이에 덕만은 어린 시절부터 정치적 감각을 익히고 신하들의 신뢰를 얻는데 집중했다. 결국 그녀는 632년 신라 최초의 여왕이자 한국 역사상 첫 여성 군주로 즉위하게 되었다.

선덕여왕의 예지력

선덕여왕은 어릴 때부터 탁월한 지혜를 가졌음을 보여주는 3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첫째 태양이 없는 꽃 모란꽃 이야기이다. 당나라에서 신라로 모란꽃 그림과 씨앗을 선물로 보냈다. 어린 덕만은 그 그림을 보고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이유는 그림 속에 나미가 한 마리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꽃이 피었으나 향기가 없어 모두가 덕만의 지혜에 감탄했다고 전해진다. 

둘째 "도리천에 묻어라"라는 미래를 내다본 예언을 했다. 어린 덕만은 신라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불교 경전을 공부했다. 후에 그녀는 자신의 무덤을 도리천(부처가 사는 하늘)에 묻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실제로 신하들이 그녀를 경주 낭산에 안장하면서 이 말이 사실이 되었다고 한다. 

셋째 "큰 별이 떨어지면 나라에 변란이 있을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어린 시절부터 별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던 덕만은 "큰 별이 떨어지면 나라가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가 죽기 직전 하늘에서는 큰 유성이 떨어졌다고 한다. 

선덕여왕의 업적

선덕여왕은 신라 사회의 정신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 불교를 적극 장려했다. 신라의 대표적인 불교문화유산들이 그녀의 통치 시기에 건립되었다. 645년에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였다. 당시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건립하였다. 백제 출신의 대건축가인 아비지가 설계하였다. 이 목탑은 삼국통일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신라 최대의 불교 건축물이다. 647년경 첨성대를 건립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천문 관측을 통해 농업과 국가 운영에 활용하였다. 첨성대는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한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마지막으로 분황사 및 분황사 모전석탑을 건립했다. 분황사는 선덕여왕이 건립한 대표적인 불교 사찰이고 분황사 모전석탑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신라 최초의 석탑이다.

선덕여왕은 국방 강화와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당나라와 친교를 맺었고 이는 훗날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 외교적 기반이 되었다. 선덕여왕은 김유신, 알천, 서현 등 유능한 장군을 기용하여 군사력을 강화하고 백제의 침공을 저지,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 

신라의 왕권은 귀족 세력인 진골 귀족에 자주 견제 당했다. 그래서 선덕여왕은 김유신을 중심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군사적 기반을 다졌다. 647년 여자가 왕이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을 하며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김유신이 반란을 진압하면서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제 및 과학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별자리와 하늘의 변화를 연구하여 농업과 국가 운영에 활용하였다. 천문학이 국가 정책에 반영될 정도로 발전시켰다. 가장 대표적으로 첨성대를 건립하였다. 발전한 천문학을 이용해 농사에 적절한 시기를 예측하였다. 그리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저수지와 관개 시설을 정비하였다. 

역사적 의의

선덕여왕은 신라 사회에서 여성도 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후 신라에서는 진덕여왕(28대), 진성여왕(51대)이 즉위하며 여왕 체제가 가능했음을 증명하였다. 선덕여왕이 왕에 오를 수 있음은 성골 신분이었기에 가능했다. 왕이 된 이후에 불교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훗날 신라가 백제, 고구려를 정복하고 676년 삼국 통일을 이루게 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