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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의 어린시절, 독립운동 활동, 후손 김용만

by 역정이 2025. 1. 20.

 

백범 김구의 어린시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꼽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어린시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구는 1876년 8월 29일 (음력 7월 11일) 황해도 해주 백운방 덕천리의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본명은 김창암 이었으며, 이후 김창수로 개명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김순영과 어머니 곽낙원은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자녀들에게 성실과 인내를 가르쳤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배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김구는 유년기에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집안의 경제적 어려움은 그의 자립심과 생존 의지를 키우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정의감이 강하고 의협심이 넘쳤습니다. 그는 약한 사람들을 돕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김구는 가난으로 인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독학을 통해 지식을 쌓으며 학문에 정진하였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조선의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고 나라의 어려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19세가 되던 해 동학을 접하며 강한 민족적 자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학군의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역할을 맡아 활동하였고 농민들과 함께 불의에 맞서 싸우며, 탐관오리를 처단하고 부패한 권력에 저항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는 동학운동을 통해 민중이 단결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음을 깨닫고 훗날 독립운동을 이끄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백범 김구의 독립운동 활동

백범 김구는 일제강점기 동안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지도자입니다. 그의 독립운동 활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김구의 초기 독립운동으로는 1896년 치하포 사건이 있습니다.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군 밀정으로 의심된 쓰치다를 처단하고 체포된 사건입니다. 체포 된 후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탈옥에 성공하여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백범 김구의 독립운동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김구는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습니다. 1926년 임시정부 국무령(수반)을 맡으며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1931년 임시정부의 재정과 활동 기반이 약화되자 무장투쟁 노선을 강화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을 조직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가 있습니다. 1932년에 이봉창이 일본 도쿄에서 천황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였고, 같은해 윤봉길이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군 고위층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김구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구는 1940년에는 주석(수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 중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여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광복군은 연합군의 일원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여하였고 일본 본토 침공 작전에도 협력했습니다. 그리고 김구는 민족주의 계열의 한국광복군과 사회주의 계열의 조선의용대를 통합하려고 노력하며 좌우 협력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님

백범 김구의 광복 이후의 활동과 최후

김구는 해방 후 1945년 11월에 귀국했습니다. 그러나 남북 분단과 외세의 개입으로 인해 실망했습니다. 그는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을 통해 통일된 정부를 세우고자 노력했습니다. 1948년 평양에서 김일성과의 회담을 시도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1948년 8월에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불참하고 통일된 민족국가 건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격으로 암살을 당하며 최후를 맞이 하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큰 충격과 논란을 남겼습니다. 

 

백범 김구의 후손 증손자 김용만 국희의원

백범 김구의 후손인 증손자 김용만 국회의원은 2022년 1월 더불어민주당 청년 인재로 영입되어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같은 해 하남시 을 지역구에 전략 공천되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현재 정무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정책위원회 부의장, 역사정의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등의 당내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로 활동하며 역사와 보훈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입법 활동으로는 국가배상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다양한 법안을 대표 발의하며 입법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 본회의장에서 권성동 국회의원이 김용만 의원을 째려보고 가면서 서로 기싸움을 했다. 그리고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표결 때 강명구 의원의 멱살을 잡기도했다. 카리스마 느껴지는 모습에 앞으로 의정활동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