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어린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1946년 9월 1일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자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가족들은 힘든 농사일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매우 잘했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학비를 내는 게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의 도움으로 중학교까지 진학하여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특히 역사책과 위인전을 좋아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 진학이 힘들었기에 등록금이 저렴하고 졸업 후 취업이 가능한 부산상고(현 개성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학업 성적이 우수했습니다. 이후 대학 진학 대신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법조인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검사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서민과 약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합격한 경험에선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노무현의 정치 활동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 활동은 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1988년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부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원이 당선된 후, 국회에서 5공(전두환 정권) 청문회 활동을 통해 유명해졌습니다. 1989년 12월 31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 "당신이 그렇게 얘기하면 국민들이 믿겠습니다?"라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며 권위적인 태도로 일관하던 전두환을 압박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의 비리를 날카롭게 추궁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노무현의 소신 있는 태도에 열광했습니다. 그리고 정주영 회장을 상대로 5 공화국 당시 기업이 군사정권에 얼마나 많은 정치 자금을 제공했는지에 대해 날카롭게 추궁했습니다. 이 청문회를 통해 기업과 권력의 유착 관계를 폭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산에서 출마하였으나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습니다. 정치에서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여러 차례 부산과 경남 지역에서 출마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하였습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을 맡아 행정 경험을 쌓았습니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갓 신설된 부처였으며, 노무현 장관은 초대 장관으로서 중요한 정책들을 추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해양 주권 강화와 EEZ 관리 체계 정비, 부산항 등 항만 개발과 해양 물류 경쟁력 강화, 어민 보호 및 수산업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비록 장관직을 오래 맡진 않았지만 해양수산부의 기틀을 잡고 대한민국이 해양강국으로 나아가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다시 정치권에 복귀를 했습니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입니다. 재임기간은 2003년부터 2008년 5년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끌었던 정부는 참여정부입니다. 국민이 단순히 정책의 대상이 아닌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부를 지향해서 만들었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참여를 통한 변화를 핵심 가치로 삼고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를 확대하려는 개혁적인 의미의 참여정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에 힘썼습니다.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했습니다. 기자실 폐지 및 브리핑 제도 도입해서 정보 공개를 확대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제를 도입하여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국민경선제를 도입하여 대선 후보를 국민이 직접 뽑도록 개선했습니다. 경제 정책으로는 소득 증가와 지역 균형 발전에 힘썼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하고 IT·반도체·자동차 산업을 육성하여 수출 3,0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행정 수도 이전을 추진하여 지역 균형 발전에 힘썼습니다. 행정 중심복합도시 계획을 수립하여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세종시를 추진하고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정책을 도입하여 지방 경제 활성화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하여 다주택자와 부동산 투기를 차단했습니다. 복지 및 사회 정책으로는 기초생활 보장을 확대하고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도입했습니다. 의료보험을 확대하여 저소득층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고 아동수당을 지급했습니다. 교육 개혁으로는 국가 장학금을 확대하여 저소득층 대학생들을 지원해 주고 사교육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EBS 수능 강의를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남북관계 발전으로는 2007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역대 두 번째 남북 정상회담입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을 추진하고 남북 간 군사적 충돌 방지에 합의하고 6자 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했습니다. 국제 외교 및 국방 정책으로는 자주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전시작전권 환수 결정을 하였습니다. 한국군이 독자적으로 전시작전권을 행사하도록 미국과 합의했습니다. FTA 자유무역협정을 확대하고 한·미 FTA 체결을 추진, 한·칠레, 한·싱가포르 FTA 체결했습니다. FTA 체결로 한국 경제의 글로벌 시장 개방이 더 확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