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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농단 사건 주요 인물, 핵심 사건 정리, 의미와 영향

by 역정이 2025. 3. 27.

주요 인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큰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최신술이라는 비선 실세가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챙긴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되었습니다. 최순실(현재 개명 후 최서원)과 여러 관계자들은 처벌받았습니다. 

2013년부터 2017년 박근혜 정부에서 최순실이 국가 정책과 인사 등에 개입하였습니다. 기업들에게 거액의 돈을 강요한 사실이 2016년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입수하여 보도하면서 국민적 공분이 커졌고 결국 헌정 사상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되었습니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 인물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 박정희의 딸로 정치명문가 출신입니다. 1998년 정계 입문 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에서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묵인 혹은 지원한 혐의를 받은 인물입니다.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기업들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요구했습니다. 청와대 기밀문서를 유출하고 인사개입, 삼성과의 뇌물 거래에도 연루되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혐의를 부인했으나 탄핵 후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징역 2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국정농단으로 20년과 국가정보원 특활비 2년 총 22년형을 선고받았지만 2021년 12월 문재인 정부에서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습니다.

두 번째 인물로는 최순실입니다. 현재 개명하여 최서원이며 비선 실세입니다. 박근혜의 오랜 친구이자 故 최태민 목사의 딸입니다. 최태민은 박근혜와 친분이 깊었고 그의 영향으로 최순실도 박근혜 곁에서 힘을 키우게 됩니다. 공식적인 직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정책과 인사에 개입했습니다. 최순실은 청와대 문건을 미리 받아 박근혜 연설문을 수정해주기도 했습니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해 대기업으로부터 거액을 강제 기부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딸 정유라의 승마 특혜를 위해 삼성으로부터 뇌물 수수도 하였습니다. 최순실은 징역 18년, 벌금 200억 원을 선고받고 현재까지도 혐의를 부인하며 복역 중입니다.

세 번째 인물은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입니다. 이재용은 삼성그룹의 총수로 이건희 회장의 아들입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부 지원이 필요했던 시점에 박근혜와 최순실과 연루됩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승마용 말과 훈련비 등 금전적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뇌물을 제공했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았습니다.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복권되어 삼성 경영에 복귀했습니다.

네 번째 인물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입니다. 그는 경제 전문가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정책 수립 담당을 맡았습니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대기업들에게 미르 ·K스포츠재단 기부금을 강요하였고 경제 관련 정책에 최순실이 개입하도록 방조했습니다. 그는 징역 5년에 벌금 6천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네 번째 인물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입니다. 박근혜의 최측근 보좌관으로 1998년부터 함께 일한 측근입니다. 청와대 문건을 최순실에게 유출하여 국정개입을 도운 핵심 인물입니다. 국가 기밀이 담긴 대통령 연설문, 외교문서 등을 최순실에게 전달하였습니다. 정호성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다섯 번째 인물은 전 청와대 민정수석 우병우입니다.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역임했습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묵인하고 방조했고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경찰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했습니다. 우병우 역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여섯 번째 인물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입니다. 그는 법조인 출신이자 박근혜 정부에서 핵심 참모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하여 정부 비판 인사를 배제했습니다. 최순실과 박근혜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기여한 자입니다. 징역 4년 선고 후 복역했습니다. 

일곱 번째 인물은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입니다. 최순실의 조카로 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입니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통해 기업 후원금을 착복하고 최순실과 함께 미르·K스포츠재단 비리에 가담했습니다. 장시호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순실의 딸 정유라입니다. 승마 선수로 활동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삼성으로부터 승마 지원을 받는 대가로 박근혜 정부의 편의를 제공하고 이화여대 입시 및 학점 특혜를 받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정유라는 직접적인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이화여대 입학이 취소되었습니다. 

국정농단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핵심 사건 정리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최순실 게이트)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2013년 2월 25일 제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가 취임합니다. 같은 해 8월 정윤회 문건을 최초 작성합니다. 이는 박관천 경정이 작성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해서 많은 아이들이 죽음에 내몰릴 때 대통령의 부재가 온 국민을 더욱 화나게 했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6월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관련 문건이 청와대 내부에서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1월 28일 '정윤회 문건'이 세계일보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2015년 1월 검찰은 정윤회 문건은 허위라고 결론을 내리고 박관천과 조응천을 기소합니다. 같은 해 7월 25일 미르재단 설립을 추진합니다. 2016년 1월 13일 K스포츠재단을 설립합니다. 7월에는 차은택 주도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실행됩니다. 9월 20일 JTBC 방송사는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합니다. 10월 24일 JTBC에서 태블릿 PC 입수해 최순실 연설문 개입 증거 보도합니다.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연설문 유출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합니다. 10월 27일 최순실이 독일에서 귀국합니다. 10월 31일 최순실은 긴급 체포됩니다. 11월 4일 박근혜는 2차 대국민 사과를 합니다. 11월 20일 검찰은 박근혜를 최순실과 공모하였다고 적시하고 피의자로 공식 입건합니다. 11월 29일 박근혜는 임기 단축을 포함한 퇴진 입장을 발표합니다. 12월 3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합니다. 12월 9일 국회는 234표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키고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됩니다. 12월 2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시작됩니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탄핵 인용을 선고하여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되게 됩니다. 3월 21일 박근혜는 검찰에 소환되고 3월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구속되게 됩니다. 4월 17일 박근혜는 혐의 사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됩니다. 2017년 5월 9일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2018년 4월 6일 1심 재판에서 박근혜는 징역 24년을 선고받습니다. 8월 24일 2심 재판에서는 징역 25년으로 형량이 증가합니다. 2019년 8월 29일 대법원에서 박근혜 사건 일부를 파기환송합니다. 10월 17일에는 파기환송심이 시작됩니다. 2021년 1월 14일 대법원 최종 판결에 따르면 징역 20년이 확정됩니다. 12월 24일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를 특별사면 할 것을 발표합니다. 2022년 3월 24일 박근혜는 특별사면되어 대구 사저로 이동합니다. 간단히 시간대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미와 영향

국정농단이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과 행정 운영이 합법적인 절차나 원칙을 따르지 않고 소수의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즉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고 권력을 사적으로 쓴다는 뜻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드러난 국정농단 사건은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가 대통령의 연설을 사전에 받아 수정하고 인사 및 정책에 개입했으며 재단(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대기업의 돈을 강제적으로 모금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국정농단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정농단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통령 탄핵이 실제로 실행된 중요한 사례로 남게 됩니다. 박근혜의 탄핵 이후 기존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바뀌었고 당 내부에서도 친박과 비박으로 나뉘며 갈등이 격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촛불 집회는 평화적인 대규모 시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삼성, 롯데, SK 등 대기업이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한 사실이 밝혀지며 대기업과 정부의 유착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대기업 총수들도 줄줄이 재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경영 투명성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대통령의 탄핵 과정과 국정 혼란이 지속되면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져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과거 정권에서도 비선 실세가 존재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비선 실세가 실제로 국정 운영을 했다는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면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을 높이고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초기에 일부 보수 언론과 검찰이 이 사건을 덮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후 검찰과 언론 개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시키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혀지면서 문화예술인들의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었고 국민들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대한민국은 많은 변화를 하게 됩니다. 청와대 문건 관리를 더욱 강화하고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헌 논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기관과 비영리재단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한층 더 강화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 정치권과 결탁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기업의 정치 개입을 제한하는 규제가 강화되었습니다.